가족분만하는 아빠들, 마음 독하게 잡수시라

초보 아빠의 정신없는 육아일기1-제1막 탄생편 5장

너무나 무서운, 충격과 공포의 출산장면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아내의 말에 따르면 병실 안에선 도저히 눈뜨고 보아줄 수 없는 장면들이 벌어졌다 한다.
힘을 제대로 못주는 아내가 힘을 제대로 줄 수 있게 도와주는 자세는...



그렇다. 서커스나 중국 기예단 공연에서 많이 보던 다리 올리기 자세였다.

간호사 두명이 붙어 한쪽씩 다리를 잡고 머리 위로 밀어붙이는데 그 자세의 민망함과 다리저림은 잠시 출산의 고통를 잊게 해줄 정도였다나..

 그사이 나는 밖에서 멍하게 앉아있었는데, 우습게도, 너무 배가 고팠다.
 사실 새벽같이 아침을 먹고 2시께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배가 고픈게 당연했다.
 이렇게 급박하고도 가슴뛰는 격동의 순간에도 어김없이 배가 고프다니. 잠시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 밥벌이의 지겨움이여. 그렇다고 누구한테 배가 고프다고 말할 수도 없고, 밥먹으러 나갈수도 없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 동생은 제수씨가 진통하고 있는 옆에서 김밥을 사서 우적우적 먹는 바람에 간호사들에게 `이런 아빠는 처음 본다'는 놀라움 반 빈축 반의 웃음을 샀다고 한다. 대단한놈.

 그렇게 대충 30분이 흘렀나. 간호사가 나와서 날 불렀다.
 "아빠 어디 계세요?"
 "아.. 여긴데요."
 "어서 들어오세요."
 
 얼떨결에 간호사를 따라 분만실에 들어간 순간, 나는 내 인생에서 두번째로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다. 첫번째는 뭐냐고? 조금 있으면 알게 된다. 아,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

 그 장면은 지친 아내가 양쪽 다리를 분만침대 다리 받침대에 올려놓고 은밀한 곳을 드러내 놓은 장면이었다. 그 전에도 그 부분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_-) 그땐 부끄러움같은 감정이 들어설 여지가
없을 정도로 지친 아내의 표정과 무표정한 간호사들과 의사의 얼굴들이 합쳐져 매우 기괴했다. 어찌 보면 푸주간의 고기같은...(위험한 발언을 하는군)

 하지만 나는 아빠. 의연해야 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아내의 머리쪽으로 가서 섰다. 사실 그것은 아내가 신신당부한 것이기도 했다. 가족분만할때 절대 아래쪽을 보지 말고 상체 쪽만 쳐다보라고. 밖에 나갔다 오는 바람에 망했지만.
 
 내가 들어가자 마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우선 간호사 두명이 와이프 배를 사정없이 누르기 시작했다. 산모들이 흔히 말하는 `밀어내기 한판'이었다. 말 그대로 아기를 배에서 밀어내는 것. 나는 겁나서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는데....

 의사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힘줘요. 머리가 보입니다."

 "아악~"

 아내가 소리를 지르고 그와 동시에 뭔가 종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머리 나왔어요."
 
 호기심에 못이겨 다리쪽을 쳐다본 순간. 아,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장면이 또 있다니.. 그러니까, 이 장면이 내가 평생 본 가장 무서운 장면이었다.
 아내의 다리 가운데로 삐쭉 튀어나온 희끄무레한 물체. 아기의 머리였다. 아직 미끌미끌한 점액질이 가득 묻어 있었고, 게다가 피도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그러니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


 그래, 에이리언.

 잠시 정신을 놓을뻔 한 순간, 의사가 다시 소리쳤다.
 "이제 한번만 더 힘주면 됩니다."
 슬슬 머리가 나 나왔고 곧바로 몸까지 스르륵 빠져나왔다. 머리가 나오고 몸이 안빠져 고생하는 산모도 종종 있다는데 다행히 순산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그저 충격과 공포 속에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고개도 돌릴 수 없었던 것이다.
 아기가 끝까지 다 빠져나오자 간호사들이 다함께 소리를 질렀다.
 "2시45분. 남자입니다."
 원래 아기가 나오면 나온 시각과 성별을 외치는 게 산부인과의 관례인것 같았다.

 그리고 또 충격과 공포의 탯줄 자르기 시간. 벌벌 떨면서 가위로 탯줄을 자르는데 아 그놈, 되게 질기더만. 그래도 서너번씩 실패한다는 다른 아빠들과 달리 한방에 성공.
 
 그 뒤로는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아빠 이리 오세요."
 아기는 옆에 있는 작은 침대 같은 곳에서 대충 몸이 닦인 뒤에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고 간호사는 나를 옆에 세워두고 손가락 발가락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 열. 맞죠?"  "예, 맞습니다."
 "발가락도 하나, 둘, 셋... 열 맞죠?" "네."

 아기의 항문도 확인시켜줬다.
 "항문도 잘 뚫려 있죠." "네."


 나에게 대충 아기의 상태를 확인시켜 준 뒤 아기를 엄마의 가슴에 올려줬다. 신기하게도 엄마의 가슴에 올려놓으면 아기는 금방 안정된다고 한다. 아내도 정신도 없고 실감도 별로 안나는 모양이었다.
 한다는 소리가
"우리 아기야?"
 그럼 우리 아기지. 남의 아기겠냐.
 
 나도 그제서야 아기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새까맣고 얼굴도 찌그러져 있었다. 코에는 무슨 피지가 그렇게 송송 올라와 있는지. 피부는 퉁퉁 불어 쭈글쭈글했다. 내가 아는 선배 누님은 아기를 가슴에 올려놨는데 너무너무 징그러워서 "저, 죄송하지만 이거 좀 치워주시겠어요"라고 했단다. -_-;
 하지만 눈이... 눈이 정말 맑았다. 촛점도 없는 눈을 이러저리 굴리고 있는 모습. 그때서야 뭔가 뭉클했다.

 그래 아기야 내가 아빠다. 니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구나. 반갑다.

by 흐르는별 | 2007/08/16 17:47 | 육아일기 | 트랙백 | 덧글(0)
재능은 갈수록 원숙해 지는가, 소진돼 사라지는가.

실망스러운 베르베르의 신작 '파피용'을 읽고(스포일러 주의)


뛰어난 재능은 해를 거듭할수록 원숙해 지는가. 아니면 소진되어 사라지는가.

가끔씩 그런 사람들이 있다. 데뷔때가 가장 좋았고, 그 뒤로는 그저 그런 사람들. 그게 어떤 문화장르라도 상관없다.
영화쪽이라면 M. 나이트 샤말란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런 사람들.
가지고 있는 멋진 재능을 더할나위 없이 한방에 멋지게 폭발시키고 그 뒤로는 그저그런 작품을 만들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에게 얼마나 멋진 재능이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의 새 작품이 나올때 마다 두근두근 기다린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실망은 거듭되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번은..' 이라는 기대를 버릴 수 없는 사람.
베르베르는 나에게 그런 작가다.

그의 작품은 '개미'가 가장 좋았다.
그 이후 작품은 내 생각에 개미를 100으로 놓으면
60~70 사이를 오가는 수준이다.
물론 그 60~70이 평범한 작가의 100보다는 훨씬 낫다.

가장 최근의 장편 '뇌'는 사실 50 정도였다.
새로운 비전과 인식의 지평이 보이지 않는 작품.
물론 재미는 있었다. 그만한 이야기꾼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최근작 '파피용'은 좀 심하다 싶다.

이야기의 기본 얼개는 이렇다.(아래는 스포일러)

한 과학자가 인간은, 즉 지구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인간을 다른 태양계에 이주시키고자 한다.
그 도구는 빛에너지로 움직이는 초거대 우주 범선.
돛의 크기가 한 대륙의 크기에 맞먹는, 그 안에 수십만명의 인간이 거뜬히 살아갈 수 있는 크기의 '파피용'(나방)호.

그에게 교통사고의 악연으로 얽힌 여성 요트 챔피언과
폐암 판정으로 지구에서의 삶에 흥미를 잃은 억만장자가 합류한다.
그리고 1000년의 우주여행 동안 인간이라는 종을 유지시킬 14만명의 탑승자와
그들의 후손이 수십대를 이어 1000년 뒤 다른 우주에 인간이라는 생명의 씨를 뿌릴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모인다.

자기를 버리고 우주라는 신세계로 가려는 그들을 질시하는 나머지 모든 인간들을 피해
숨막히게 우주로 올라간 그들에게도 또다시 불거지는 생각의 차이.
그리고 수많은 왕국과 종교가 명멸하고 반란과 전쟁이 되풀이되는 우주선 속의 1000년.

마지막에 두명의 남녀만이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고,
뱀에게 사고로 물려 죽은 여자를 대신해
마지막 남은 한사람의 남성은 자신의 갈비뼈의 골수를 이용해
인간의 배아를 한 명의 여자아이로 성장시킨다.
사람의 이름을 항상 헷갈리는 그 여자아이는
그 남자를 아담으로, 뱀에게 물려죽은 여자를 리리스로, 자신을 이브라고 부르고, 
먼 옛날 우주선을 설계했던 과학자를 야훼라 부르고,
처음에는 우주선을 만드는 더없는 협조자였으나 나중에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을 사탄이라 부르며 자란다.

는 이야기다.

뭐, 이건 성경+혹성탈출+몇개 일본 애니의 얼기설기 조합이라고나 할까.
초반엔 나름 반진감 넘치나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용두사미 구조다.
재야 오타쿠가 만든 어설픈 애니 시나리오라고 해도 믿을법한 이야기.
본인은 뭐 생명의 유전이라든가 역사의 순환이라던가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 같지만....

뭐, 또다시 하는 이야기지만 물론 재미는 있다. 한권짜리로 양도 많지 않아 하루저녁이면 뚝딱 읽을 수 있을 정도.
그저 베르베르는 더 좋은 작품을 쓸 재능이 있다(혹은 있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by 흐르는별 | 2007/07/13 16:43 | 내맘대로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분만실에서 쫒겨나다

초보 아빠의 정신없는 육아일기1-제1막 탄생편 4장


 3분까지 치닫던 진통 간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출산기들을 볼 때는 진통 간격은 줄어들기만 할 것 같더니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았다. 5분을 넘어 7분 가까이 늘어질 때도 있었다. 

 아기야, 막상 나오려니 두려운겐가. 세상이 사실 엉망이긴 하지만 그래도 살만하다 싶은 면도 제법 많다구. 아빠가 비록 돈은 별로 없지만 열심히 놀아주긴 할께. 걱정말고 나와라. 등등 속으로 중얼중얼.

놀아주기의 예제. 아빠와 아들의 즐거운 한때.



 결국 촉진제를 놓기로 했다. 노란 주사액이 아내의 정맥을 타고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저 약이 나오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자궁밖으로 밀어내겠지.

 이래저래 정신없는 와중에 간호사가 와서 몇가지를 물어봤다. 사소한 것이지만 약간은 고민스러운 결정. 첫번째는 아기 낳고 난 다음에 맞는 영양제의 종류. 3만원 짜리와 10만원 짜리였나. 잠시 고민하다(고민했다는 건 아내에게는 비밀) 10만원 짜리로.
 또 하나는 선천성 대사이상 검사. 국가에서 공짜로 해주는 것은 6가지 정도 밖에 안되니 돈을 내고 추가로 검사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뭐 어쩔 수 있나. 간호사가 참고 자료(!)라고 주는 종이에는 '혹시 대사이상을 조기에 발견 못하면 애기가 죽는다' 정도의 이야기밖에 안써 있으니... 12만원이었나. 뭐 당연히 이것도 해야지요.
 (내 친구 한명이 누누이 이야기하는 거지만 돈 벌려면 결혼 사업 또는 애기 관련 사업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사람들이 제일 개념없이 돈 쓰는 것이기도 하고 '이왕 하는거 더 좋은 걸...'이라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기도 하는 때이기도 한 것 같다.)

 금방 장모님과 처제가 도착했다. 아내는 아직 정신이 멀쩡한지 장모님과 처제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V를 그렸다. (사실 아내는 갑상선 혹 제거 수술 뒤 우리 부모님이 병실로 찾아오시자 V를 그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 악질 V범이다. 본인은 당시 마취가 안깨어서 기억이 안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통이 세지지도 약해지지도 않는 상태에서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간호사는 가끔씩 들어와서 진통간격을 물어볼 뿐 별다른 조처를 취해 주지는 않았다. 자궁문도 처음에 왔을때 5cm 정도 열렸다고 이야기하고는 그 뒤로 더 열리지 않고 있단다.
 아내는 계속 자궁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봐달라고 간호사에게 부탁하라고 성화지만 자꾸 들여다 본다고 더 빨리 열리는 것도 아니고... 아내는 고통이 심하다기 보다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통에 지친 것 같았다. 잠을 자고 싶은 눈치였다.
 
 간호사가 들여다보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산부인과에서 산모들을 부르는 용어인듯 했다)! 지금 놀러온거 아니에요. 애기 낳으러 온 거에요. 힘 안주면 애기만 더 힘들어요."
 제법 무서웠다.
 "아빠도 뭐하세요. 엄마 힘 좀 주게 도와주세요."
 "아.. 네.. 네."
 나도 혼났다.

 진통이 올때 힘을 주는 방법은 진통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10초 정도 최대한 힘을 주는 것이란다.
 사실 어디에 힘을 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큰일 볼때와 비슷하게 힘을 주면 된다는데...
 내가 할 일은 아내가 힘을 10초간 계속 줄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란다. 근데 사실 어떻게 응원해야 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옛날 코미디 프로에서 자주 보던 산파처럼 "힘줘~"라고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그래서 내가 한 것은 진통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까지 세어주는 것 뿐이었다.

 그것도 그나마 몇번 하고 나니 아내가 말했다.
 "씨끄러워. 그만해."
 상처받았다.
 장모님과 처제도 비웃었다.

 산통을 견디다 못해 남편에게 욕을 퍼부은 산모들도 있다하니 욕을 안먹은게 그나마 다행이다.

 아내는 택도 없는 투정까지 부리기 시작했다.
 "나 지금이라도 무통 주사 맞을래."
 "지금 주사 맞으면 진통시간만 길어져. 얼릉 쑴풍 낳아버리고 끝내자. 응?"
 내 필사적인 설득에도 아내는 땡깡을 부린다.

 
 오가며 그 꼴을 한참 지켜보던 간호사가 정오쯤 최후통첩을 내렸다.
 "가족들 모두 방에서 나가 있으세요."
 "네? 저도요?"
 "아빠까지 다 나가 계세요."
 
  방 밖으로 쫒겨나서 복도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니 제법 아기를 기다리는 아빠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예전에 보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다들 복도에서 온가족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만 나왔었다. 내 뇌리에는 아기의 출산을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이 '복도에서 초조해한다'는 스테레오타입으로 굳어져 있었던 듯. 가족분만이 보편화되면서 이런 모습은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말이다.

 복도 소파에 앉아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다 건강해야 될텐데. 이제 저 녀석을 어떻게 키우나. 이름은 뭘로 지을까. 아, 배고프다...

 엄마야, 아기야 모두 힘내라.

by 낭만오리 | 2007/07/03 18:49 | 트랙백 | 덧글(0)
병실을 가득 채운 아기의 심장 소리

초보 아빠의 정신없는 육아일기1-제1막 탄생편 3장

 
 병원에 막 도착했을 때는 6시30분께였다. 병원이 집 바로 근처라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일요일 새벽의 병원은 어둡고 조용했다.
 2층 분만실에는 당직 간호사 한명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간호사는 그다지 아파하지 않는 아내를 보고 잠시 왜 왔나 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는 가방까지 들고 천천히 걸어서 들어갔던 것이다.


 "저기... 분만하러 왔는데요."
 (아님 뭐하러 왔겠냐!)


 뒤늦게 간호사는 후다닥 가족분만실을 치우며 안에 들어가서 누으라고 했다. 
 가족분만실엔 산모용 의자와 작은 소파가 놓여져 있었다. 벽에는 엽서 크기만한 그림 하나.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곳을 거쳐갔던 수많은 산모들의 고통의 신음과 비명, 그들이 흘린 피 냄새가 내 몸을 엄습... 할리 없는 깔끔하고 조그만 방이었다. 

 혈압 등 간단한 검사를 마친 아내는 침대에 누워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출산의 시간을 기다리며 기약없는 진통의 고통 속으로 들어갔다.

 진통은 5분 간격 정도로, 진통이 오면 1분 정도 고통이 지속됐다. 아내 말을 빌면 슬금슬금 아프기 시작하다가 확 많이 아팠다가 사르르 사라지는, 이를테면 싸인 그래프 같은 파동을 그리며 고통이  온단다.
 그런데 아무리 말을 해도 그 고통은 내 상상 이상의, 도무지 상상이 불가능한 고통이라 사실 진지하게 동정하거나 같이 아파하기가 힘들었다.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떤 수필에서 '나는 숙취란 것을 한번도 겪어보지 않아서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을 진지하게 동정하기 힘들다. 다른 사람들은 동정심이 부족해서라지만 나도 책상 모서리에 정강이를 부딪힌 사람은 진지하게 동정한다'고 한 적이 있다. 그 심정이 나도 이해가 갔다.


분만실에 들어가서 얼마 안있어 찍은 사진. 
사실 시간대별로 사진 많이 찍을거라고 생각하고 카메라를 들고 갔지만
정신도 없고 아파하는 아내를 찍는 게 예의도 아닌것 같아서 진통중 사진은 이것밖에 없다.


 조금 있다가 간호사가 들어와서 무통 주사를 맞을 것인지를 물어봤다.
 무통 주사를 맞을 것인가는 전부터도 심각하게 고민해 오던 문제였다. 그리고 오랜 논의 끝에 결국 맞기로 결정을 한 상태였다.
 나는 당연히 맞겠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산모께서 별로 진통이 심하지 않으신거 같아서 안 맞아도 되실 거 같은데..."라고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다니던 병원은 상주하는 마취과 의사가 없어서 무통 주사를 맞으려면 출장 의사를 불러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간호사가 밖으로 나가자 아내가 "나 생각보다 안아파. 무통주사 안 맞아도 될거 같애"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응. 그래?"
 나는 급하게 나가서 간호사에게 주사를 안 맞겠다고 말했다. 간호사의 그 귀찮아하는 표정이란.

 (무통 주사는 척추를 마취해서 진통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주사다. 요즘 대부분의 산모는 무통주사를 맞는다. 하지만 무통주사를 맞는 경우 조금이지만 마취 성분이 아이에게도 영향이 갈 수 있고 고통을 많이 못느끼는 탓에 산모가 힘을 잘 못줘서 출산시간이 길어지는 부작용이 있어 권하지 않는 의사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병원에 상주하는 마취과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주사를 맞는 것을 권유하고 말리는 가장 큰 이유인것 같다.)
  
 아내로서는 아이를 위해 큰 선물을 준다는 느낌으로 무통 주사를 안맞는다고 결심한 것이다. (아기 낳고 난 뒤 상당한 유세를 떤 바 있다. ㅎㅎ)
 진통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그것이 정말 큰 결단이었다고 인정해 마지 않는다.
 고마운 일이다. 주사값도 번 셈이라.. 쿨럭.
 
 그리고 뒤늦게 고향집과 처가집에도 연락을 드렸다.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장모님은 금방 오시겠다고 하셨고, 어머니는 기쁨 반 걱정 반으로 순산을 비셨다. 아마 전화를 끊고 바로 절에 달려가셔서 기도를 하셨을 게 틀림없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아이의 상태를 알기 위해서라며 아내의 배에 뭔가 장치를 부착했다. 쿨렁 쿨렁하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다. 아기의 심장 소리란다. 너무 빨라질 경우 문제가 있는 거란다. 
 
 쿨렁 쿨렁
 쿨렁 쿨렁
 
 아, 아기도 저렇게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힘을 쓰는구나. 그래 엄마 아빠도 힘내마.

by 낭만오리 | 2007/06/29 17:21 | 육아일기 | 트랙백 | 덧글(0)
병원 갈 준비 완료

초보 아빠의 정신없는 육아일기1-제1막 탄생편 2장


 아내가 각종 출산기를 읽고 나서 정리한 출산일 행동방침의 기본 얼개는 대충 이랬다.

 1. 병원가면 더 힘들다더라. 최대한 집에서 버틴다.
 2. 배가 엄청 고프다더라.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오기 전에 나에게 밥을 든든히 챙겨먹여라.
 3.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생스럽다더라. 남편이라도 체력을 확보하라.
 
 이 세개의 기본 원칙 아래 진통이 시작되는 시각대별로 다양한 시나리오가 짜여져 있었다. 그리고 시간대 별로 먹여야 하는 메뉴도 따로 정해져 있었다. 가장 압권은 진통이 오전에 시작되면 오후쯤에 삼겹살을 사먹고 병원으로 간다는 부분이었다. -_-; 몇시간의 진통중에 체력이 떨어지면 큰일난다며 다양한 출산기에서 추천하고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굶주렸던 엄마들의 한이 서린 조언이었다.
 (보통 병원에 가면 아무리 출산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아기 낳느라 용을 쓰는 와중에 큰 변(-_-)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처음에 관장을 한다. 힘을 줄때 일을 저지를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안먹고 가는 산모들이 많은데, 먹은 음식이 완전히 소화돼 몸밖으로 배출되는 데는 적어도 6~7시간이 걸리니 음식을 먹고 가도 된다. 이때 챙겨먹지 못하면 적어도 반나절 이상은 빈속으로 진통을 겪게 되는 셈이다. 진통이 6~7분 간격일때, 병원 가기 바로 전 든든하게 밥을 챙겨먹자. 아내도 큰일을 저지르진(응?) 않았다.)

 그리고 시나리오상 밤에 진통이 시작되면 내가 우선 할 일은, 진통이 5분 간격이 될 때까지 잠을 자는 것이었다. 산모를 돌볼 사람이 체력을 보존해야 된다는 거창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잤다.

 막 시작된 진통의 아픔은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아내도 진통이 올때만 낑낑거리지 그외엔 그다지 힘들어 하는 거 같지 않았다. 본인도 큰 아픔은 없고 배가 세게 뭉치는 정도의 느낌이라고 했다. 11시 정도까지 아내의 등을 토닥여 주다가 잠들었다. 평소에 잠이 잘 들지 못하는 내가 그날만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이 더 잠을 쉽게 들도록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서 잠이 온것은 아니었는지...

 

아내가 새벽에 진통 시간을 체크해 적어놓은 종이. 혼자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 시간에 나는 쿨쿨 자고 있었다니... 새삼스레 죄책감이 든다.



 "이제 일어나서 밥사와."
 아내가 날 깨운 것은 새벽 6시가 조금 안돼서였다.
 "응, 간격은 몇분이야?"
 "5분 된지 조금 지났어."
 
 정신없이 허둥지둥 옷을 차려입고 집에서 멀지 않은 24시간 설렁탕집으로 차를 몰아 달려갔다. 새벽에 밥을 먹어야 할 경우 정해져 있던 메뉴였다. 급한 마음에 어떻게 사왔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설렁탕집 점원이 나의 초조한 얼굴을 보고 '일요일 새벽부터 배가 어지간히 고팠나 보군'이라고 생각했을 거 같다.
 
 집에 와서 설렁탕을 차려주면서도 정신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긴장되고 가슴이 쿵덕쿵덕 뛰어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설렁탕과 밥 한그릇을 싹 비웠으니 배는 고팠었나보다. 아내는 반정도밖에 못 먹었다. 
 흠. 이래저래 무신경한 아빠인 것 같은 소리를 계속하고 있다. 나 정말 긴장하고 있었던 거 맞다.

 

설마 이런 소릴 듣게 되는 건 아니겠지...



 아내는 새벽에도 계속 진통을 느끼다 보니 잠도 거의 자지 못했던 듯 했다.
 대충 치운 뒤 아내가 싸놓은 출산 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물론 이 때도 행동 방침이 있었다. 비데 변좌 난방 끄기, 보일러 끄기, 가스 잠그기 등등... 
 
 병원 갈 준비 모두 완료.

by 낭만오리 | 2007/06/25 19:10 | 트랙백 | 덧글(0)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